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오넬 조스팽 (문단 편집) ===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첫 번째 대권 도전 (1995년)]]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9X8PoM52Nw)]}}}|| 이후 사회당의 실질적인 주도자로 떠오른 조스팽은 1995년 2월 3일, 사회당 경선에서 65.85%를 득표해 34.15%만을 득표한 앙리 에마뉘엘리를 크게 꺾고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당시에는 연임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미테랑의 3선이 가능했으나, 79세로 너무 고령이고 병마와 싸우고 있던 중이었고 미테랑에 대한 지지율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3선을 포기하기로 한 것. 사실 사회당은 미테랑의 당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마땅한 거물이 없었으나,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추월하는데 성공했고 선거운동기간 동안 [[자크 시라크]]와 엎치락 뒤치락했으나 4월 23일 1차 투표에서 23.3%를 득표해 20.84%를 득표한 시라크를 누르고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좌파 표심을 단순 합계할 경우 우파에 비해 훨씬 낮았는데, 우파 성향의 전 총리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18.58%로 3위를 기록했고 극우 [[국민연합(프랑스)|국민전선]]의 [[장마리 르 펜]]이 15%를 얻어 4위로 돌풍을 일으켰고 7위 후보이지만 5%를 득표한 펠레페도 우파성향의 후보였기때문에 우파 후보를 다 합치면 득표율이 60%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04a1r4oX6QM)]}}}|| 이후로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을 다수 흡수하며 지지율을 차근차근 끌여올렸고 토론회에서도 상당한 선전을 했지만 결국 결선투표에서 47.4%로 패배한다. 다만 1993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참패한것이나 1차 투표에서 우파 지지율이 60% 이상 나왔다는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선전이었기에 "비록 지금은 떨어졌어도 다음에는 꼭 될 것"이라는 말을 했고 1997년 총선으로 총리로 등극하면서 현실화되는듯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조스팽이 영원히 대통령이 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